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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엠엔틱바이오텍, 美 현장 검증 통해 시장 진출 전략 구체화

서울바이오허브·스탠퍼드대 북미 시장 진출 지원 사업

 

 

국내 바이오·헬스케어 스타트업들이 미국 현지 검증을 거치며 북미 진출 전략을 재정비했다. 국내에서 바라본 ‘미국 시장’과 실제 의료 현장의 수요·구매 구조 사이에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서울바이오허브는 스탠퍼드대학교 d.school, SCIDR과 함께 최근 ‘2026 보건·의료 창업기업 북미 시장 진출 지원 사업’을 운영했다. 엘엠엔틱바이오텍, 파마로보틱스, 아이젠텍, 베스펙스, 제로더, 모닛, 비욘드메디슨 등 사업에 참여한 7개 기업은 10일간 현지 병원과 연구기관, 투자자, 규제 전문가, 현지 창업가 등을 만났다. 

 

기업들은 이 과정을 통해 국내에서 수립한 시장·고객 가설을 검증했다. 그 결과 북미 시장은 예상보다 세분화돼 있었고, 기술력이나 미국 식품의약국(FDA) 인허가만으로 시장 진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파악했다. 현지 확인 결과를 토대로 기업들은 고객층과 제품 포지셔닝부터 영업·투자 유치(IR) 전략까지 대폭 수정을 거쳤다. 

 

‘미국 시장’ 전체보다 세분화된 고객 봐야

 

소아사경 AI 재활 솔루션과 산후우울증 케어 솔루션을 개발하는 제로더는 미국 소비자를 하나의 집단으로 묶기 어렵다는 점에 주목했다. 김진욱 제로더 이사(Tech Lead)는 “한국에서는 인구와 시장 규모를 표 한 장에 정리해 놓고 ‘미국 시장’이라고 불렀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라이프스타일 트라이브(lifestyle tribe)’의 집합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생활방식과 육아·건강에 대한 가치관에 따라 제품을 기대하는 집단이 달랐다는 설명이다. 

 

제로더는 이후 현지 의견을 바탕으로 미국 전체를 포괄하기보다 우선 공략할 고객군을 나누고, 각 집단에 맞는 메시지를 달리 설계하기로 했다. FDA 기준상 ‘진단’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는 제품 설명과 마케팅 표현도 재점검하며 규제 검토 시점을 앞당기기로 했다.

 

B2B 의료시장에서도 구매 구조의 차이가 드러났다. near-POC 분자진단 플랫폼을 개발하는 아이젠텍은 국내에선 의사를 주요 영업 대상으로 설정했지만, 미국에선 임상의뿐 아니라 병원 운영 관리자(Operations Manager)와 보험사까지도 구매 의사결정에 관여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에 따라 아이젠텍은 이해관계자별로 영업 메시지를 세분화했다. 

 

부부 가임력 관리 플랫폼 ‘Soonr(수너)’를 운영하는 베스펙스는 현지 고객 인터뷰를 통해 IVF·IUI 시술 과정에서 기업 복지를 활용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는 것을 파악했다. 이를 토대로 일반 소비자 시장뿐 아니라 FSA·HSA와 기업 복지 시장까지 사업 기회를 확대해 검토하고 있다.

 

첨단 기술보다 경쟁력 있는 비용·업무 효율

 

기술 경쟁력을 평가하는 기준에서도 차이가 나타났다. 아이젠텍은 현지 병원 종사자와 VC, 규제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기술의 복잡성이나 사양 자체보다 기존 업무 개선과 비용 절감 효과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포착했다.

 

이승우 아이젠텍 이사(CSO)는 “미국은 최첨단 기술을 원하는 시장이라고 생각했지만, 한국식 시스템과 문화로 미국에서 사업하려 하면 안 되고, 미국 문화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조언을 반복해서 들었다”고 말했다. 아이젠텍은 고사양 기술 경쟁에서 벗어나 워크플로우 자동화와 사용 편의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제품 전략을 조정했다.

 

병원 내 주사제 자동조제 로봇을 개발하는 파마로보틱스는 현지 병원에서 자동화가 이뤄지지 않은 영역을 발견했다. Good Samaritan 병원에는 BD Pyxis를 비롯한 자동 분배 시스템이 설치돼 있었지만, 주사제를 조제하는 작업은 여전히 사람이 담당하고 있었다. 

 

현지 약사들이 자동화를 필요로 하는 배경에는 인건비와 약사 부족 문제가 있었다. 유현우 파마로보틱스 이사는 “비어 있는 시장’을 확인한 순간이었다”며 “기존 자동화 시스템과 경쟁하는 방식에서 분배와 조제 사이의 수작업을 보완하는 제품으로 포지셔닝을 수정했다”고 말했다. 

 

스마트 기저귀 센서 기반 AI Care Orchestration 플랫폼을 개발하는 모닛도 현지 병원에서의 실제 사용 환경을 살폈다. 서기현 모닛 이사(CAIO)는 의료진과의 대화를 통해 미국 종합병원에선 고령 환자의 피부염과 욕창 위험 등을 고려해 기저귀 대신 PureWick이나 Condom Catheter 같은 대체 기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들었다. 모닛은 이를 바탕으로 타깃 시장과 제품 수요를 재검토하고 있다. 

 

 

FDA 이후 보험·임상·사용성까지 고려해야

 

미국 시장 진입과 투자유치 전략도 대대적으로 수정됐다. 액체생검 플랫폼을 개발하는 엘엠엔틱바이오텍은 그동안 사업의 낮은 위험성을 중심으로 투자자에게 설명해왔다. 백서림 엘엠엔틱바이오텍 이사는 현지 투자자로부터 “당신들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더 크게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전했다. 사업이 성공했을 때 얼마나 더 커질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이후 엘엠엔틱바이오텍은 사업의 출발점을 바꿨다. 기술과 사업계획을 순서대로 나열하는 기존 소개 방식을 수정해 환자와 의료진이 겪는 문제를 먼저 제시하고, 이를 해결하는 기술과 시장 기회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IR 자료를 재구성했다.

 

턱관절장애(TMD) 처방형 디지털 치료기기를 개발하는 비욘드메디슨은 FDA 인허가 이후의 시장 진입 과정에 주목했다. 제품이 실제 시장에 들어가기 위해선 보험 상환(Reimbursement)과 임상 근거, 의료진의 처방 경험, 환자 사용성 등이 함께 갖춰져야 했다.

 

이나래 비욘드메디슨 운영총괄(COO)은 현지 투자자와 전문가들로부터 “기술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지가 중요하다”는 조언을 반복해서 들었다고 전했다. 회사는 이에 따라 환자의 치료 여정(Patient Journey)과 제품이 만들어낼 경제적 가치(Value Proposition)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향으로 메시지를 수정하고 있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한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확인한 것은 기술력 못지않게 현지 고객과 의료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북미 진출에서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관건은 ‘좋은 기술’을 앞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에서 실제로 필요한 해법을 찾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 기업은 국내에서 세운 가설을 현장에서 다시 검증하며 고객과 제품, 시장 접근 전략을 구체화했다. 정주원 베스펙스 대표는 현지 고객 개발에 대해 “연애와 비슷하다”고 표현했다. 그는 “화상 인터뷰를 아무리 반복해도 직접 만나 상대를 이해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서울바이오허브는 이번 시장 검증 결과를 후속 사업화로 연결할 계획이다. 참여 기업들이 현지에서 재정의한 고객과 제품 포지셔닝, 시장 검증 데이터를 바탕으로 영문 피치덱 재정비를 지원하고, 스탠퍼드 연구진 등 현지 기관과의 파트너십과 투자유치도 연계할 예정이다.

 

일부 기업은 후속 협의를 진행 중이다. 엘엠엔틱바이오텍은 프로그램에서 만난 스탠퍼드 연구그룹과 논의를 이어가는 한편 시더스-사이나이 메디컬센터와 공동연구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오는 11월 미국을 재방문해 협력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파마로보틱스도 현지 약국들과 파트너십 논의하면서 국내에선 KGMP 시설 IQ/OQ와 제품 인허가 절차를 병행하고 있다.

 

서울바이오허브 관계자는 “북미 시장 진출은 국내에서 개발한 기술을 미국으로 가져가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며 “현지 의료 생태계가 어떻게 움직이고 누가 구매를 결정하며 실제 사용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 먼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들이 현장에서 기존 사업 가설을 직접 검증하고,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수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번 프로그램의 핵심”이라며 “현장에서 얻은 결과가 제품 개선과 파트너십, 투자유치 등 실질적인 북미 사업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후속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강조했다.